수묵으로 그려진 독수리가 발톱으로 컴퓨터 마우스를 쥐고 하늘을 날고 있다. 마우스 속 기계장치는 투명하게 들여다보인다. 나뭇가지 위에 앉은 부엉이 옆에는, 역시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휴대폰이 앉아 있다. “독특하고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더니 작가는 기다렸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예술은 유희라고 생각합니다. 눈이 즐거워야죠. ‘뭐지? 어떻게 만든거지?’하는 반응이 나오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서울 관훈동 모로갤러리(02-739-1666)에서 30일 첫 개인전 ‘오리엔탈 엑스레이’를 시작하는 사진작가 채경씨(27)는 엑스레이로 촬영한 기계장치들을 작품에 등장시킨다. 카메라, 전자기타, 휴대폰, 마우스, 노트북 등이다.
“겉으로 인식하는 사물의 모습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하지만 본질은 같죠. 엑스레이도 사물의 실체를 보여주잖아요. 엑스레이 촬영이 ‘본질을 얘기하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채씨는 인체를 촬영하는 병원 엑스레이기기를 사용해 전자장치를 촬영한다. 독수리, 부엉이 등 수묵으로 그린 것 같은 대상들은 실제로는 한국화가에게 주문을 해 그린 것이다. 자신의 아이디어대로 주문한 그림을 사고 저작권을 갖는다. 스캔한 수묵화와 촬영한 엑스레이 파일을 합해 한지에 디지털 출력한다. 작품은 액자에 넣지 않고 족자에 붙인다.
“엑스레이로 촬영하면 약간 번진 것처럼 경계가 표시되거든요. 수묵도 번진 듯한 느낌이 표현되잖아요. 서로 어울리겠다 싶어서 엑스레이 디지털사진을 수묵화와 결합시켰어요. 전통과 현대, 기계와 회화를 공존시키고 싶었습니다.” 노트북과 카메라 등 단품 촬영으로만 구성된 솔로 작품과, 수묵화와 함께 구성한 시리즈 등 20여점의 작품을 전시에 선보인다. 모로갤러리 전시(2월12일까지) 후 서울 태평로1가 신한갤러리(02-722-8493)에서도 2월13일부터 23일까지 전시가 열린다.
동양과 서양, 예술과 과학
접목시킨 X-ray 사진
신한갤러리는 2008년 상반기 전시공모로 선정된 채경의 사진전 ‘오리엔탈 엑스레이’를 2월13일부터 2월23일까지 연다. 채경은 사물의 내면을 흑백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X-ray의 특성과 묵의 농담을 이용해 대상의 내적인 본질을 동양수묵화처럼 촬영했다. 그는 대학병원의 진료가 끝난 밤에 디지털 X-ray촬영기를 가지고 작업했으며, 한지에 디지털프린트를 해 낙관을 찍는 등 족자의 형태를 차용해 X-ray디지털사진의 현대적인 방법론과 전통 수묵화의 전통기법을 접목했다. 이러한 사진은 순수사진이면서 과학사진이라고 말하는 작가는 이번 작업을 통해 X-ray가 가지는 21세기 새로운 표현수단으로서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예술과 과학, 고전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만남을 이끌어냈다고 밝혔다. 문의 02)722-84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