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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녹청자 도요지 

행복늘이기 2007. 10. 20. 19:33
녹청자 도요지  
미추홀
신토불이 자기 녹청자(綠靑磁)는 통일 신라 시대의 토기에서 발전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녹갈색의 표면이 고르지 못한데다가 태토(胎土)에 모래 등 불순물이 섞여 있는 것이 중국에서 유입된 고품격 청자와는 달리 소박한 서민적 자태다.
김영원 현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은 "인천 경서동에서 구워졌던 녹청자가 11세기 이후 소멸한 것은 강진과 부안에서 생산된 양질의 청자가 전국적으로 확산됐기 때문"이라고 '경서동 녹청자 도요지 조사 보고서'에서 전하고 있다. '경서동 녹청자'의 존재가 확인된 것은 1965년이었다. 이경성, 정양모 선생 등에 의해 2년간 4차례에 걸쳐 발굴한 결과, 가마치고는 소규모이나 그릇을 구울 때 수평을 유지하기 위해 '도지미'를 배열한 독특한 구조임을 밝혀낸 바 있었다.
일본인들이 '도지미'를 일본 고유의 양식이라 하고, 그 가마에서 생산한 '녹청자'를 '이라보(伊羅保)'라 하여 애지중지해 왔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경서동에서 연대가 앞선 '녹청자'가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고미술 사상 중대 발굴이었다. 1970년 정부가 이를 국가 사적(史蹟) 제211호로 지정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후의 관리는 엉망이었다. 그 같은 관리 부실을 당시 본보 문화부장이었던 필자에게 귀뜸해 주신 분은 부끄럽게도 정양모 전 국립박물관장이셨다.
부랴부랴 가보니 '국가 사적'이라고 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는데, 요즘도 그 모양이라는 본보의 보도이다. 애초에 골프장을 허가한 자체가 잘못이지만 "입지 조건상 발굴하지 못한 요지가 적어도 10여 군데는 족히 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추가 발굴 제안도 고려해 봄직한 시점이다. 경서동을 '관광지'로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조우성  <객원논설위원>
출처 : 형과니의삶
글쓴이 : alz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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