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권력을 둘러싼 한판 싸움이 시작됐다" | |||||||||
[프레시안 강양구/기자]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지난 2월 1일 새해 국정연설에서 "미국은
석유에 중독됐다"며 '기술'의 힘으로 이를 벗어나겠다고 밝혔다. 여기서 부시 대통령이 말한 '기술'이 원자력 발전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1970~80년대의 잇따른 사고로 미래의 에너지로서 자격을 상실하는 듯했던 원자력 발전이 다시 화려하게 부활하는 것일까? 세계재생가능에너지위원회 헤르만 셰어 의장은 최근 펴낸 〈에너지 주권〉(배진아 옮김, 고즈윈 펴냄)에서 이런 부시 대통령의 시도가 '최후의 발악'일 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최후의 발악 뒤에는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에너지 자본이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원자력 에너지', 오히려 더 위험해졌다 〈에너지 주권〉에서 특히 눈 여겨봐야 할 부분은 왜 원자력 에너지가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는지를 설득력 있게 설명한 앞부분 '태양이냐 핵이냐'다. 최근 원자력 에너지의 르네상스를 주창하는 캠페인이 크게 세 가지 논리로 구성돼 있음을 지적한다. 사고발생 위험이 현저하게 줄어든 새로운 원자로에 대한 약속, 기후변화로 인해 초래된 재앙, 그리고 원자력 에너지 없이는 도저히 '석유의 시대'를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패배감. 셰어 의장은 이 세 가지 논리를 하나씩 반박한다. 우선 원자력 에너지의 위험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감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커지고 있다. 북한,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른바 핵의 평화적 이용(원자력 발전)과 군사적 이용(핵무기)의 경계는 애매모호하기만 하다. 세계 최고의 원자력 에너지 의존도를 보이고 있는 프랑스의 경우 그것이 핵무기의 지속적인 보유 욕심과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프랑스도 처음에는 핵의 평화적 이용을 내세웠었다. 전 세계 32개 국에 분산 설치돼 있는 439개의 핵 발전 시설이 확산되는 테러에 의해서 그 자체로 '치명적인 흉기'가 되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세계적으로 원자로를 타깃으로 한 테러를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며,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온 플루토늄과 같은 물질은 테러리스트들에게 갈취돼 언제든지 치명적인 핵무기로 변경될 수 있다. 특정 국가들 간의 대립을 넘어선 '새로운 형태의 전쟁'에서 원자력 에너지가 과연 평화적 이용에 한정될 수 있을까? 반세기 동안 1조 원 쏟아부어도 불완전해…'값싼 에너지' 아니다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환상을 부추기는 '값싼 에너지'라는 인식도 바로잡아야 할 오해다. 이른바 그 경제적 효과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정치적 지원 및 특권 부여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자력 발전소 건설업체들은 각종 면제 조치를 비롯해 도처에서 막대한 투자 지원을 받고 있다. 당장 한국수력원자력(주)에 쏟아 붓는 국민의 혈세는 가장 대표적인 예다. 세계적으로도 1950~92년에 원자력 에너지 연구개발 비용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총 3180억 달러를 지출했다. OECD에 포함되지 않은 국가들(예전 동구권 국가들)까지 포함할 경우 지난 반세기 동안 원자력 에너지 연구개발 비용에 들어간 돈은 최소 1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그 기간 동안 풍력, 태양 에너지 등에 들어간 비용은 아무리 많이 잡아봐야 400억 달러에 못 미친다. 이렇게 막대한 비용을 쏟아부었지만 여전히 원자력 에너지의 경쟁력은 위태롭기만 하다. 197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원자력 에너지 개발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한 데에는 거세지는 여론의 저항도 한몫 했지만 더 크게는 막대한 비용 상승이 그 원인으로 작용했다. 게다가 2010년을 전후해 각국의 원자력 발전소의 유효기간이 다하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또다시 집중적이고 장기적인 자본투자가 불가피하다. 물론 그 돈은 고스란히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태양이냐 핵이냐'…에너지 권력을 둘러싼 전쟁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둔다면 '태양 에너지'와 '원자력 에너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답은 명확하다. 하지만 거대 석유기업들은 여전히 태양 에너지와 같은 재생가능 에너지 대신 원자력 에너지를 선호할까? 그것은 바로 원자력 에너지와 함께라면 지금의 권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원자력 에너지 생산이 분산적으로 이뤄지고, 반대로 재생가능 에너지 생산이 반드시 대형 발전소를 거쳐야만 한다면 그들은 당연히 원자력 에너지를 거부하고 재생가능 에너지를 차기 대안으로 선택했을 것이다. (…) 그 알량한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 (그들은) '원자력 공동체'를 결성하여 원자력 에너지의 중요성을 조직적으로 과장하고, 원자력 에너지를 제외한 나머지 대안들을 열등한 것으로 평가절하한다." 그들이 대중을 기만하는 '어설픈 마술' 중 또 다른 하나는 '수소 경제'에 대한 환상을 부추기는 것이다. 원자력 에너지를 이용한 수소 생산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이른바 '수소 혁명'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수소를 미래 에너지로 떠벌리는 열기가 강해지는 것은 (…) 원자력 에너지 옹호자들의 희망사항이기도 하다. 수소에 대한 찬성표 가운데 많은 부분이 실제로는 핵에 대한 찬성표인 셈이다. (…) 부시가 추진하고 있는 17억 달러짜리 수소 프로그램은 이미 설명한 대로 원자력 에너지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만이 이런 환상에 부화뇌동하는 것은 아니다. 한 재벌기업이 내놓은 수소 연료전지 자동차에 '감전'된 노무현 대통령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도 바로 이렇게 '수소 혁명'의 가면을 쓴 원자력 에너지의 확대다. '수소 경제'를 지탱하는 데 쓰이는 수소를 도대체 어떻게 만들 것인가? 여기에 대한 답을 내놓지 않는다면 '수소 경제'는 없다. '태양과 바람의 지구'를 누가 외면하는가 이런 최근의 분위기는 재생가능 에너지의 미래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최근 10년 간 유럽연합(EU)의 각국을 중심으로 재생가능 에너지 확대를 위해 주목할 만한 시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재생가능 에너지 도입에 앞장서는 독일 등에서 이에 대한 격렬한 저항이 관찰되는 것도 우려스러운 일이다. '태양과 바람의 지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셰어 의장은 '에너지 전환'을 위한 10가지 원칙을 제시하면서 책을 맺고 있다. 그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위협적인 세계 경기침체에 대처하려면 재생가능 에너지를 이용해 경기를 활성시켜야 한다'는 원칙이다. 연간 성장률이 30%에 육박하고, 그 결과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많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는 재생가능 에너지 산업을 경제에 대한 활력제로 삼는 지혜를 우리는 왜 외면하는가? 강양구/기자 - Copyrights ©PRESSian.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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